기질적 복통과 기능성 복통
  • ▲ 황인섭내과의원 임수영 원장
    ▲ 황인섭내과의원 임수영 원장
    "배가 아파요." 

    아이들이 병원에 오는 이유 중 가장 흔한 말 중 하나다. 

    그런데 막상 진찰해보면 열도 없고, 구토나 설사도 없으며, 검사에서도 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보호자들은 고민에 빠진다. 정말 아픈 것일까, 관심을 끌기 위한 행동일까?

    소아청소년에게 반복되는 복통은 크게 기질적 복통과 기능성 복통으로 나뉜다. 

    기질적 복통은 장염·변비·위염·장 중첩증·식중독 등과 같이 신체 구조나 기능에 뚜렷한 이상이 있는 경우를 말한다. 보통은 열·설사·혈변·식욕저하·수면장애 같은 다른 증상이 함께 나타나기 때문에 비교적 명확하게 진단할 수 있다.

    반면, 기능성 복통은 검사에서는 이상이 없지만 복통을 호소하는 증상이 반복되거나 지속되는 상태다. 특히 복통이 2개월 이상 반복되며 일상생활에 영향을 주는 경우 ‘기능성 복통’이라는 진단을 고려하게 된다. 소아 기능성 복통은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에 흔히 시작되며, 성장하면서 점차 나아지는 경우가 많다.

    기능성 복통의 원인은 명확하지 않지만, 스트레스·불안·긴장·식습관·수면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낯선 환경에 적응하거나 학교생활에서 긴장을 많이 하는 아이들이 아침마다 복통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심리적 요인이 소화관에 영향을 주는 ‘장-뇌 축(gut-brain axis)’이라는 개념도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장과 뇌는 서로 신경 신호와 호르몬, 면역반응을 통해 영향을 주고받으며 연결돼 있는데, 이 축이 민감한 아이일수록 스트레스가 복통으로 표현될 수 있다.

    보호자로서는 아이가 복통을 반복하면 걱정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기능성 복통은 위험한 병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아이의 마음을 살펴주는 것이 치료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프지 않잖아”라고 단정짓기보다 “어디가 불편한지 같이 이야기해보자”는 태도가 아이에게 큰 안정을 줄 수 있다.

    물론,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꼭 진료를 받아야 한다. 복통이 밤에 깨서 아플 정도로 심할 경우, 구토·설사·발열·혈변이 동반되는 경우, 체중이 감소하고 식욕이 없는 경우, 특정 부위를 지속적으로 아프다고 표현하는 경우다.

    이럴 때는 기질적 원인이 있을 수 있으므로 검사가 꼭 필요하다.

    기능성 복통이 의심될 때는 지나친 약물치료보다 식사 간격 조절, 적절한 수면,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환경을 함께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복통 일기를 함께 써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어떤 상황에서 복통이 자주 나타나는지 관찰하면서, 아이 스스로 몸의 신호를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다.

    아이의 복통은 단순히 ‘아픈 것’ 그 자체가 아니라, 몸이 보내는 신호이자 마음의 언어일 수 있다. 검사에서 이상이 없다고 해서 그냥 넘기지 말고, 아이의 일상과 감정을 함께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때로는 그 작은 배앓이가, 아이가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임수영 황인섭내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