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추미애에서 개혁의 상징 '추다르크'로제주4·3 진실규명, 촛불정부 탄생, 검찰개혁입법·사법·행정 두루 거친 6선 정치인경기도지사 당선으로 경기도정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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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미애 경기도지사 당선인이 지난 4일 6·3 지방선거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승리 후 지지자 등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추미애 선거캠프 제공
추미애 경기도지사 당선인이 30년 정치 인생의 모든 경험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최대 지방정부 경기도의 새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추 당선인이 걸어온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그러나 어느 시대, 어느 자리에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외면하지 않았다.권력이 두려워 침묵하던 시절에도, 지역주의가 정치를 갈라놓던 시절에도,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순간에도, 개혁의 저항이 가장 거셌던 순간에도 추미애는 늘 가시밭길 위에 섰다.판사, 6선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대표, 법무부 장관, 국회 법제사법위원장.그의 이력은 화려해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편한 길보다 어려운 길을 선택해 온 시간의 연속이었다.그래서 추미애의 정치 인생은 한마디로 '책임의 길'이었다.이제 그 책임은 경기도로 이어졌다.1420만 경기도민은 추미애에게 대한민국 최대 지방정부의 미래를 맡겼다.추 당선인은 "경기도는 대한민국의 축소판이자 미래"라며 "도민의 선택을 무겁게 받들어, 이재명 정부와 함께 경기도에서 대한민국 정상화를 완성하고 도민의 삶을 실제 성과로 바꾸겠다"고 말했다. -
- ▲ 추미애 경기도지사 당선인(왼쪽)의 초등학생 시절 모습. ⓒ추미애 선거캠프 제공
◇ 대구 세탁소집 둘째 딸, 판사가 되다1958년 대구에서 태어난 추 당선인은 세탁소를 운영하던 집안의 둘째 딸로 자랐다.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공부로 자신의 길을 열었다. 가난은 더 단단해지는 이유였고, 어려운 환경은 세상을 더 낮은 곳에서 바라보게 만든 배움이었다.한양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하고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판사의 길에 들어섰다.대구 세탁소집 둘째 딸이 법복을 입기까지의 시간은, 추미애가 어떤 환경에서도 스스로 길을 만들어온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첫 장면이었다.법복을 입은 추미애는 이미 그때부터 달랐다.군사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전두환 정권 아래에서도 양심과 법 원칙을 지키려 했다.권력의 요구에 고개 숙이지 않았고, 부당한 영장 발부를 거부했다. 권력이 아무리 강해도 법은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지키는 보루여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그에게 법정 국가 권력이 어디까지 행사될 수 있는지, 법이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 억울한 국민을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 스스로 묻는 자리였다. 이때의 경험은 훗날 정치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원칙이 됐다.추미애의 정치는 그래서 처음부터 사법 정의와 맞닿아 있었다.법은 강한 사람을 위한 방패가 아니라 약한 사람을 위한 울타리여야 한다는 믿음, 국가권력은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앞에 책임져야 한다는 믿음이 그의 출발점이었다. -
- ▲ 추미애 경기도지사 당선인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걷고 있다. ⓒ추미애 선거캠프 제공
◇ 김대중의 발탁, 정치의 문을 열다추 당선인이 현실 정치에 발을 들인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가 결정적이었다.판사 출신 여성 법조인이라는 안정된 길을 뒤로하고, 더 거칠고 어려운 정치의 길을 택했다.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서울 광진을에 출마해 국회에 입성했다.당시 여성 정치인이 지역구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그러나 추미애는 골목을 누비고 시민을 만나며 정치의 기본을 몸으로 익혔다.국회 입성 후 법과 제도, 인권과 과거사, 지역주의와 정치개혁의 문제에 정면으로 뛰어들었다.정치는 국민의 삶을 가로막는 벽을 넘는 일이라고 믿었다.추미애의 정치에는 늘 '현장'이 있었다.법정에서 만난 국민의 삶, 지역에서 들은 시민의 목소리, 시대가 남긴 아픈 역사,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개혁의 과제들이 그의 정치를 만들었다.◇ 제주4·3, 침묵 속에 묻힌 국가폭력의 진실을 끌어올리다추미애 정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은 제주4·3이다.초선 국회의원 시절, 누구도 쉽게 손대지 못하던 제주4·3의 진실과 명예회복 문제를 붙잡았다.오랜 세월 국가폭력의 상처 속에 놓여 있던 제주도민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았다.특히 수형인명부를 통해 억울한 희생의 기록을 확인하고, 침묵 속에 묻혀 있던 진실을 제도와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제주4·3사건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을 대표발의하며, 국가가 외면해 온 역사를 국회의 책임으로 만들었다.제주4·3은 오랫동안 말하는 것조차 금기였던 역사였다.피해자와 유족은 억울함을 말하지 못했고, 국가는 침묵했다.그러나 추미애는 그 침묵을 깨야 한다고 봤다.국가가 국민에게 저지른 폭력을 바로잡는 일은 민주주의의 기본이라고 믿었다.그 길은 훗날 법무부 장관 시절까지 이어졌다. 억울한 수형인들의 재심과 명예회복, 배·보상까지, 추미애는 처음 시작한 일을 끝까지 책임졌다.4·3은 그에게 과거의 일이 아니었다.억울한 피해자의 이름을 되찾아주는 일, 국가가 국민 앞에 책임지는 일, 그것이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 길이었다.◇ 지역주의의 벽 앞에서 탄생한 이름, '추다르크'추미애의 정치 인생은 지역주의와 정면으로 맞선 시간이기도 했다.대구 출신으로 민주개혁 진영의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지역주의가 한국 정치를 강하게 갈라놓던 시절, 대구 출신 정치인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손을 잡고 민주당의 길을 걷는다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다.그러나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지 않았다.지역주의의 벽이 높을수록 더 당당히 맞섰고, 편 가르기 정치가 강할수록 국민통합과 민주주의의 길을 선택했다.말로만 지역주의 타파를 외친 정치인이 아니었다.대구에서 '잔다르크 유세단'을 이끌고 낡은 지역주의의 벽을 향해 직접 뛰어들었다.한 표가 아쉬운 곳, 민주개혁의 깃발을 드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곳에서 물러서지 않았다.지역주의의 높은 장벽 앞에서도 신념을 꺾지 않고, 불리한 싸움일수록 더 당당히 맞섰던 사람.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추다르크'라 부르기 시작했다.한국 정치가 넘어서야 할 낡은 벽 앞에서 끝까지 물러서지 않은 정치인에게 국민이 붙여준 이름이었다. -
- ▲ 추미애 경기도지사 당선인이 지난 4일 수원 현충탑을 참배하고 있다. ⓒ추미애 선거캠프 제공
◇ 6선 국회의원, 법사위원장으로 개혁의 마침표를 향하다추미애는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으로 다시 국회에 돌아왔다.다시 국회로 돌아온 뒤에도 그는 편한 길을 택하지 않았다.6선 중진이라는 무게에 안주하지 않았고, 현안의 한복판으로 들어갔다.채해병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국방위원회 현안에도 힘을 보탰고, 윤석열 내란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했으며, 민주당 내란진상조사단장으로서 국가적 위기의 진상을 밝히는 데 앞장섰다.추미애는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라는 또 하나의 무거운 책무를 맡았다.법사위원회는 모든 법안이 거치는 국회의 마지막 관문이자, 검찰개혁과 사법개혁, 권력기관 개혁을 둘러싼 가장 치열한 전선이다.6선 중진 의원이 정치적 부담이 큰 법사위원장 자리를 맡는 것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었다.법사위원장 수락연설에서 이 자리를 권력기관 개혁을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인다고 밝혔다.법사위원장은 개혁을 제도와 법률로 완성해야 하는 책임의 자리라는 뜻이었다.그에게 법사위원회는 단순한 상임위원회가 아니었다.검찰권 남용을 바로잡고, 사법 정의를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세우며,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민주적 통제 아래 놓이도록 만드는 핵심 무대였다.개혁은 법과 제도로 완성돼야 한다는 신념이 그를 다시 전면에 세웠다.그리고 추미애는 그 약속을 끝내 지켰다. 법무부 장관 시절 온몸으로 열었던 검찰개혁의 길을,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으로서 제도적으로 완성했다.◇ 지금 경기도에 필요한 사람, 도민은 추미애를 선택했다지금 경기도에 필요한 사람은 말만 앞세우는 사람이 아니다.복잡한 문제를 실제로 풀어낼 사람이다. 중앙정부와 국회, 31개 시·군을 움직이고, 도민의 요구를 정책과 예산, 제도의 성과로 바꿔낼 사람이다.도민은 그 역할을 추미애에게 맡겼다.추미애는 입법을 안다. 사법을 안다. 행정을 안다.판사로 법의 원칙을 배웠고, 국회의원으로 제도를 만들었으며, 당대표로 선거를 이겼고, 법무부 장관으로 국가 행정의 무게를 감당했다.법사위원장으로 권력기관 개혁의 제도적 완성까지 추진했다.이제 경기도지사 당선인으로서 새로운 책임 앞에 섰다.첫 여성 경기도지사, 이재명 정부와 함께 대한민국 정상화와 경기대도약을 이끌 집권여당 도지사, 31개 시·군을 하나로 묶어 도민의 삶을 바꿀 도지사다.추미애가 걸어온 길은 언제나 쉬운 길이 아니었다.그러나 그 길마다 결과를 남겼다. 제주4·3의 진실을 제도권으로 끌어올렸고, 지역주의의 벽 앞에서 물러서지 않았고, 촛불정부 탄생을 이끌었고, 검찰개혁의 한복판에 섰고, 다시 국회에서 사법개혁의 책임을 감당했다.가시밭길을 외면하지 않았던 추미애의 길은 이제 1420만 경기도민의 삶을 바꾸는 길로 이어진다.당당한 경기, 든든한 추미애.이제 경기도의 시간이 시작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