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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악사랑의병원 정재우 과장
수면 중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갑자기 손발을 휘두르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심지어 침대에서 떨어지기까지 한다. 단순한 꿈의 반응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이러한 증상은 뇌신경계의 기능 이상을 시사하는 '렘수면행동장애(REM Sleep Behavior Disorder, RBD)'의 가능성이 있다.
렘수면은 우리가 꿈을 꾸는 단계의 수면으로, 정상적인 경우 이때는 근육이 이완되어 몸은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렘수면행동장애는 이 이완 기능이 사라지면서 꿈속 행동을 실제로 재현하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환자는 자신이 자고 있는 동안 위험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며, 때로는 자신 또는 옆 사람에게 부상을 입히기도 한다.
문제는 이 증상이 단순한 수면장애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렘수면행동장애가 파킨슨병, 루이소체 치매, 다계통 위축증(MSA) 등 신경퇴행성 질환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이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져 왔다.
실제로 RBD 환자의 상당수가 수년 내 이러한 질환으로 진행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이를 조기 신경학적 경고로 보는 시각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
최근 렘수면행동장애에 대한 학계의 관심이 높아진 것도 이 때문이다. 겉으로는 수면 중 이상행동이라는 비교적 가벼운 증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중추신경계의 퇴행성 변화가 가장 먼저 나타나는 지점 중 하나일 수 있기 때문이다.
증상이 발현된 시점부터 파킨슨병 등으로 진행되기까지의 잠복기가 평균 5~10년에 달한다는 연구도 있다. 즉, 지금의 행동이 10년 후의 진단과 직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진단은 수면다원검사(polysomnography)를 통해 이뤄지며, 수면 중 비정상적인 근긴장도와 이상행동을 기록해 확진한다. 또한 환자와 보호자의 진술, 수면 중 영상 분석 등도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된다. 진단 후에는 낙상을 방지하기 위한 환경 조절과 함께 약물 치료가 병행된다.
주로 사용되는 약물로는 클로나제팜과 멜라토닌이 있다. 클로나제팜은 수면 중 과도한 근긴장을 억제해 위험한 행동을 줄이는 데 도움을 주며, 멜라토닌은 생체 리듬을 조절하고 수면 구조를 안정화시켜 증상 완화를 위해 사용한다.
신경과 의사의 입장에서 렘수면행동장애는 단순한 수면문제가 아니라, 뇌의 특정 회로에 변화가 생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실질적인 신호다.
수면 중의 이상행동이 반복된다면, 단지 피로 때문이라며 넘기지 말고 반드시 전문 진료를 통해 신경계 평가를 받아야 한다. 행동 하나, 잠버릇 하나가 미래의 질환을 예고하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관악사랑의병원 정재우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