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더 마더'서 엘로디·니콜라 役"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짊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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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더 마더(THE MOTHER)'에서 ‘니콜라’ 역을 맡은 서진원(왼쪽)과 ‘엘로디’ 역을 맡은 가은. ⓒ천의현기자
연극 '더 마더(THE MOTHER)'의 무대는 한 여자, 안느의 머릿속이다. 그 견고했던 세계에 균열을 내는 두 인물이 있다. 어머니 곁을 떠나려는 아들 ‘니콜라’(서진원), 그리고 안느의 불안을 집요하게 자극하는 젊은 환영 ‘엘로디’(가은)다.배우 정애리가 ‘국민 어머니’의 자애로움을 벗고 붕괴의 얼굴을 그린다면, 두 젊은 배우는 그 붕괴를 끌어내는 손이다. 환상과 현실이 뒤섞인 무대 위에서 정해진 답 없이 인물을 빚어온 두 사람을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Q. 각자 맡은 인물을 어떻게 해석했나.A. 서진원(니콜라 役)= 니콜라는 갈등을 만들어내고, 어머니가 저로 인해 구원을 받을 수도, 더 깊은 수렁에 빠질 수도 있는 ‘열쇠’ 같은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집을 떠났지만 완전히 독립하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어머니에게서 벗어나지도 못한 애매한 중간 상태에 있는 인물이다. 다정하다가도 숨이 막히면 금세 입을 닫아버리고, 스물다섯이라는 나이에서 오는 솔직함과 미성숙함도 있다. 어머니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알기에 가질 수 있는, 자식의 잔인한 무심함 같은 것까지 담아내려 했다.가은(엘로디 役)= 엘로디는 안느의 불안감을 더 고조시키는 인물이다. 저는 엘로디를 객관적인 한 사람으로 보기보다, ‘안느의 시선 속에서 어떤 인물일까’를 계속 고민했다. 어느 장면에선 안느의 환상일 수도, 또 어느 장면에선 현실의 인물일 수도 있다. 정해진 답은 없다. 안느가 잃어버린 젊은 시절, 그가 갈망하는 화려함을 투영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 여러 의미의 양가성을 어떻게 가져갈지 고민이 많았다.Q. 구원이면서 차가운 현실이고,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모순된 인물이다. 그 양가성을 어떻게 소화했나.A. 가은= 정말 어려웠다. 처음엔 ‘이건 환상, 이건 현실’이라고 명확히 경계를 지어야 접근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작품을 거듭 읽고 선배님들과 연습하면서, 굳이 내가 그걸 구분할 필요는 없겠더라. 안느의 망상이든 아니든 나는 그 안에 존재하는 인물이고, 그 속에서 안느에게 줄 수 있는 자극에 최선을 다하면 되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힘들었지만 오히려 더 재밌었다.서진원= 제가 1장과 2장에 똑같이 등장하는데, 대사가 완전히 다르다. 처음엔 시큰둥한 말로, 두 번째는 ‘좋은 아침’이라며 다정하게 등장한다. 결국 사람은 누구나 모순된 마음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봤다. 시큰둥하게 말하면서도 엄마를 안쓰러워하는 마음이, 다정하게 인사하면서도 엄마가 말을 꺼내면 피하고 싶은 마음이 함께 있다. 그 이중적인 속내를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이 많았다. 본능적으로는 자연스럽게 나오는데, 의식하고 하려니 참 어렵더라. -
- ▲ 연극 '더 마더(THE MOTHER)'에서 ‘니콜라’ 역을 맡은 서진원. ⓒ천의현기자
Q. 두 사람은 안느를 ‘균열’ 내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가장 공들인 장면이 있다면.A. 서진원= 어머니와 엘로디 사이에서 줄다리기가 시작되는 장면이다. 저를 가운데 두고 두 사람이 당기는데, 제가 점점 엘로디 쪽으로 끌려가면서 어머니에게 계속 상처를 입히게 된다. 직접적으로 부딪치는 장면이 사실상 그 하나뿐이라, 그 장면을 두고 배우들끼리 이야기를 가장 많이 나눴다.Q. 대선배들과 한 무대에 서며 가장 크게 배운 것은.A. 서진원= 감정의 온도, 무대 전체를 채우는 호흡을 보면서 정말 존경스러웠다. 살아오신 세월과 경험이 연기에 분명히 배어 있더라. 다만 선배님들에 버금가려 애쓰자는 식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제가 할 수 있는 니콜라, 스물다섯 청년의 이중적인 마음을 제 방식대로 날카롭게 표현해보자는 마음으로 준비했다.가은= 대학로에서 또래들과 무대를 만들다가 대선배님들과 처음 호흡을 맞췄다. 눈을 마주치는 순간부터 눈빛이 다르더라. 이미 그 캐릭터 안에 너무 깊이 들어가 계셔서, 제가 그 눈빛에 빨려 들어가 넋을 놓을 뻔한 적도 있었다. 같은 무대에서 선배님의 에너지를 직접 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정말 많이 배웠다. -
- ▲ 연극 '더 마더(THE MOTHER)'에서 ‘엘로디’ 역을 맡은 가은. ⓒ천의현기자
Q. 관객이 이 작품을 보고 무엇을 기억하길 바라나.A. 서진원=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해보셨으면 한다.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빠, 누군가의 아들이 아니라 내 이름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본다. 제 어머니도 늘 ‘진원이 엄마’로 불리셨다. 그렇게 살다 보면 ‘나는 누구지?’ 싶은 순간이 오지 않나. 평생을 무언가에 바치고 헌신하다 그게 사라졌을 때 내게 남는 건 무엇인가. 그 속에서도 나라는 사람을 단단히 세워두면 흔들리지 않을 것 같다. 니콜라가 집을 떠난 것도 결국 ‘홀로 서고’ 싶어서였다고 생각한다. 홀로 선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함께 생각해보면 좋겠다.가은= 저는 조금 다른, 구조적인 결로 말씀드리고 싶다. 관객은 보면서 ‘저게 현실인가, 환상인가’ 혼란스러우실 거다. 그러면서 ‘진실은 무엇인가’를 묻게 된다. 우리가 진실이라 믿는 것이 과연 100% 진실일까. 개인의 경험과 감정이 들어가는 순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본다. 집에 가시는 길에 ‘내가 기억하는 진실이 정말 진실일까’ 한 번쯤 자신의 기억을 되돌아보신다면, 그리고 ‘그 엘로디 배우가 누구였지?’ 하고 한 번 검색해보신다면(웃음) 정말 행복할 것 같다.Q. 끝으로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A. 가은= 외국 작품이고 반전이 있는 심리극이라 어렵겠다고 지레짐작하고 오시는 분들도 있을 거다. 그런데 저희가 연습실에서 머리를 싸매며 던지려 했던 메시지는, 거창하게 말하면 사회, 작게는 개개인 모두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다. 어렵다는 편견보다, 그 어려움에 한번 맞서볼 용기를 내어 와주신다면 분명 많은 것을 느끼고 가실 수 있을 거다.서진원= 배우들끼리 정말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고, 지금도 계속 고민하며 만들어가고 있다. 그 시간이 무대에 고스란히 담길 거라 믿는다. 꼭 한번 보러 와주셨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