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적인 몸 이상 보여주는 징후일 수도
  • ▲ 위례아산내과 하성삼 대표원장
    ▲ 위례아산내과 하성삼 대표원장
    건강검진에서 '경도 빈혈' 소견을 받는 사람은 적지 않다. 증상이 거의 없거나, 일상생활에 큰 불편이 없다는 이유로 방치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빈혈은 그 자체보다 몸 어딘가에서 만성적 이상이 진행 중일 가능성을 보여주는 징후로서 더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

    빈혈은 말 그대로 혈액 내 적혈구 수나 헤모글로빈 농도가 낮아진 상태다. 산소를 운반하는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피로감·어지럼증·숨참 등의 증상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증상은 초기에는 거의 없거나 매우 경미할 수 있다. 문제는 빈혈이라는 결과 뒤에 숨겨진 원인을 놓치기 쉽다는 점이다.

    가장 흔한 원인은 철 결핍성 빈혈이다. 특히 가임기 여성에서는 생리 출혈에 의한 철분 손실이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중장년층 이후의 남성이나 폐경기 여성에서 철 결핍이 동반된 빈혈이 나타난다면 위·대장 등 소화기 계통의 만성 출혈 가능성을 반드시 의심해야 한다. 위염·위궤양·대장용종, 심지어 초기 대장암  같은 질환이 증상 없이 출혈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빈혈은 간질환과도 밀접하게 연관될 수 있다. 만성간염이나 간경변 환자에서는 비장 기능 항진, 엽산 대사 이상, 만성 염증 상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빈혈이 나타날 수 있다. 이 경우 단순한 철분 보충만으로는 호전되지 않으며, 간 기능에 대한 정밀한 평가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흡수장애질환, 특히 위 절제술을 받았거나 위산 분비가 저하된 환자에서는 비타민 B12 결핍에 의한 거대적아구성 빈혈이 나타날 수 있다. 거대적아구성 빈혈이란 적혈구가 비정상적으로 크고 미성숙한 형태로 생성돼 산소 운반 기능이 떨어지는 빈혈의 한 유형을 말한다. 이 또한 초기에는 피로감 외에 특별한 증상이 없어 놓치기 쉽다.

    반대로, 류마티스관절염·만성신장질환·갑상선기능저하증 같은 만성질환에서도 염증 매개 물질의 영향으로 골수 기능이 억제되며 빈혈이 서서히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빈혈은 수치보다 원인이 더 중요하다. 건강검진에서 빈혈 수치가 경미하게 낮다고 해도 반복적으로 지적되거나 호전 없이 지속된다면 원인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 특히 소화기 증상이 없더라도 내시경 검사를 고려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간 기능 검사, 철분·엽산·비타민 B12 수치 등을 함께 확인해야 진단이 가능하다.

    빈혈은 하나의 결과이자 신호다. 피곤해서 그런 줄로만 생각하고 넘긴다면 정작 중요한 질환의 진단 시기를 놓칠 수 있다. 수치는 가볍더라도, 그 안에 감춰진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하성삼 위례아산내과 대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