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초신경병증과 신경과적 감별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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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산사랑의병원 김민주 진료과장
누구나 한 번쯤 손이나 발이 저릿한 경험이 있다. 잠을 자다 팔이 저려 깨거나, 오래 앉아 있다 일어설 때 발끝 감각이 둔해지는 식이다.대부분은 일시적 혈류 저하나 자세문제로 인해 생기며,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회복된다. 그러나 이런 저림이 자주 반복되거나 특정 부위에 국한돼 지속된다면 신경계질환을 의심해야 한다.특히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말초신경병증이다. 말초신경병증은 중추신경계에서 나와 온몸으로 퍼지는 신경들이 손상되거나 기능이 떨어진 상태를 의미하며, 손발 저림의 대표적인 신경과적 원인이다.이 경우 저림은 주로 손끝이나 발끝부터 시작되고, 양측으로 대칭적인 양상을 보이는 특징이 있다. 때로는 화끈거리거나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느낌, 무딘 감각처럼 나타나기도 한다.말초신경병증은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할 수 있다. 가장 흔한 원인은 당뇨병이다. 혈당이 오랜 기간 높게 유지되면 신경섬유가 손상되고, 이로 인해 감각 저하나 저림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또한 비타민 B12 결핍, 신부전이나 간질환, 암 치료 중 사용되는 항암제와 같은 약물, 자가면역질환, 음주로 인한 독성 등도 신경 손상의 원인이 될 수 있다.진단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저리다’는 표현만이 아니라 △어느 부위가 저린가 △양측 대칭인가 △감각 외에도 근력 저하가 동반되는가 △특정 시간대에 악화하는가 △밤에 특히 심한가 △체위 변화나 압박에 영향을 받는가 등의 상세한 병력 확인이다.신경과 진료에서는 이처럼 감각이상 증상의 분포와 패턴을 매우 중요하게 본다.또 하나의 중요한 감별 포인트는 정형외과적 압박성 병변과의 구분이다. 예를 들어 손목터널증후군(수근관증후군)은 손목 부위에서 정중신경이 눌려 생기는 국소적 압박성 신경병증이다. 이 경우 저림은 엄지·검지·중지 중심이며, 손목을 꺾거나 사용할 때 악화하고, 손 전체보다는 특정 손가락 중심으로 증상이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반면 말초신경병증은 손끝부터 전체 손·발까지 서서히 퍼지는 양상이며, 대칭적인 말단부 감각 이상이 전형적이다.신경과 진료에서는 근전도검사와 신경전도검사를 통해 감각신경·운동신경의 기능을 정량적으로 평가한다. 이 검사를 통해 어떤 신경이 손상됐는지, 병변의 위치와 범위가 어디인지, 회복 가능성은 어떤지 확인할 수 있다.손발 저림은 피로 때문이라고 간과하기 쉽지만, 그 이면에는 전신질환 또는 신경계질환의 초기 신호가 숨어 있을 수 있다.특히 저림 증상이 2주 이상 지속하거나 점점 심해지는 양상을 보일 경우 단순한 근골격계의 문제가 아닐 가능성도 있다. 조기 진단과 정확한 감별을 통해 불필요한 검사와 치료를 줄이고, 적절한 치료에 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저림은 신경계가 보내는 조용한 경고다. 증상만 억누르기보다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신경의 상태를 분석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신경과 진료의 시작이다.김민주 안산사랑의병원 진료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