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신경계와 면역 반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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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산사랑의병원 임영희 진료부원장
며칠 전 진료실을 찾은 30대 여성 환자는 더운 날씨에도 몸이 으슬으슬 떨리고 어깨가 뻐근하며 소화까지 잘되지 않는다며 괴로워했다.별다른 질환 소견은 없지만, 증상은 분명했다. 이맘때쯤 매년 비슷한 증상으로 내원하는 환자들이 있다. 이른바 ‘냉방병’이라고 불리는 상태다.냉방병은 정식 의학 진단명은 아니지만, 특정한 패턴을 가진 자율신경계 이상에 기반한 기능성 증후군으로 이해할 수 있다.사람의 몸은 환경 변화에 따라 체온을 조절하고 생리 기능을 유지하는데, 이 과정은 자율신경계가 담당한다. 자율신경계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으로 이뤄져 있으며 심장 박동, 혈압, 소화, 체온 조절과 같은 중요한 생리 기능을 조절한다.여름철 실내외 온도 차가 커지면 몸은 이를 보상하기 위해 자율신경계를 과도하게 작동시킨다. 이때 교감신경이 활성화하면 긴장 상태가 유지되면서 피로감·두통·소화불량·근육통이 나타날 수 있다.특히 냉방 환경에 오래 노출된 사람들에게서 말초혈관 수축, 위장관 운동 저하, 호흡기 점막 방어력 약화 같은 변화가 관찰된다. 이는 면역 기능의 저하로 이어지며, 바이러스성 감염이나 염증 반응에 취약한 상태를 만든다.앞서 언급한 환자는 직장 내 에어컨 바로 아래 자리에 앉아 있었고, 냉방이 강하게 유지되는 공간에서 장시간 머무르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었다. 비슷한 환경을 가진 다른 환자들도 으슬으슬한 느낌과 이유 없는 피로, 잦은 여름 감기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이런 증상은 단순히 체온이 낮아져서가 아니라, 체내 항상성 유지에 관여하는 시스템의 피로와 균형 상실에서 비롯된다. 때문에 치료보다 생활환경의 조정을 우선해야 한다.실내 온도는 25~28도 사이, 외부와 5도 이내 차이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에어컨 바람은 직접 몸에 닿지 않도록 하고, 긴 옷이나 얇은 겉옷으로 체온을 유지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수면 리듬과 식사, 수분 섭취를 꾸준히 유지하는 것도 자율신경계의 회복에 영향을 준다.냉방병은 병명이라기보다 현대인의 생활 방식에서 발생하는 기능적 불균형의 또 다른 이름이다. 치료의 시작은 몸의 반응을 무시하지 않고 반복되는 패턴을 인지하는 데 있다.더위를 피하기 위해 선택한 냉방이 몸의 회복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지 않도록, 여름철 실내환경과 생활 습관을 한 번쯤 점검해보는 것이 필요하다.임영희 안산사랑의병원 진료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