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관악사랑의병원 이은석 병원장
    ▲ 관악사랑의병원 이은석 병원장
    복부수술을 받은 적 있는 환자들 중 일부는 수술이 잘 끝난 뒤에도 반복적인 복통이나 소화불량을 호소한다. 검사에서는 특별한 이상이 없다고 들었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통증과 불편이 지속되는 경우다. 

    이럴 때 의심해볼 수 있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장유착’이다. 장유착은 말 그대로 장기나 복막이 비정상적으로 서로 달라붙은 상태를 말한다. 

    복강 내 장기들은 서로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독립적인 공간을 유지한다. 그러나 수술·감염·출혈·염증 등으로 인해 복막이나 장 표면에 손상이 생기면 이 부위가 섬유조직으로 치유되며 주변 장기와 비정상적으로 붙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이를 유착이라 하며, 특히 장의 움직임을 방해할 경우 복통이나 장폐색 증상으로 이어진다.

    가장 흔한 원인은 개복수술 이후의 반흔성 유착이다. 맹장염 수술, 자궁 관련 수술, 대장 수술, 장 절제술 등을 받은 경우 수년이 지난 후에도 유착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드물게는 복막염이나 심한 복부 외상 이후에도 발생한다. 

    문제는 장유착은 일반적인 영상검사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복부 초음파나 CT 검사에서 장기 모양은 정상이지만, 실제 내부에서 장의 운동이 방해받고 있을 수 있다.

    장유착이 진단에 어려움을 주는 또 다른 이유는, 대부분의 경우 영상검사상 뚜렷한 해부학적 이상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CT나 내시경처럼 장기의 구조만 확인하는 검사는 장의 운동성 변화나 섬유성 유착까지는 보여주기 어렵다. 따라서 장유착은 기능적 문제이자 해부학적 이상 사이에 있는 회색지대로,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환자의 수술력, 증상 양상, 시간 경과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장유착의 증상은 비교적 모호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특정 식사 후 불편함, 주기적인 복부 팽만감, 변비와 설사의 반복, 때로는 식욕 저하나 구토 증상도 나타난다. 이런 증상들은 과민성 장증후군이나 기능성 위장장애와도 비슷해 자칫 혼동될 수 있다. 

    그러나 복부수술 병력이 있다면 반드시 유착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며, 진단은 복부 CT, 장 조영술, 필요 시 진단적 복강경으로 접근하게 된다.

    대부분의 장유착은 보존적 치료로 관리된다. 수술 없이 식사 조절, 장운동 조절제, 통증 완화제 등으로 증상이 호전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장폐색을 유발하거나 반복적인 장꼬임이 생기는 경우에는 수술적 유착박리술이 필요할 수 있다. 수술은 또 다른 유착을 유발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반드시 증상이 심하거나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있는 경우에는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복부수술을 받았다고 해서 반드시 장유착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복통이 반복되거나, 평소와 다른 장 증상이 지속된다면 단순한 소화기 이상이 아니라 외과적 병변의 가능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장유착은 구조적인 문제인 만큼, 진단의 출발점은 병력 청취와 임상적 의심이다. 수술 이후의 복통, 더 이상 ‘수술 잘됐으니 문제없다’는 말로 지나쳐서는 안 된다.

    이은석 관악사랑의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