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안산사랑의병원 이경록 진료부원장
    ▲ 안산사랑의병원 이경록 진료부원장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는 위점막에 감염돼 위염·위궤양·위암 등 다양한 위장질환의 원인이 되는 세균이다. 

    사람 간 전파가 가능한 이 균은 국내 성인의 절반 이상에서 감염 흔적이 확인될 만큼 흔하다. 그러나 헬리코박터 감염이 곧바로 치료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제균치료가 필요한 상황과 그렇지 않은 상황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헬리코박터는 위산에 강하고 위점막 안쪽에 깊숙이 침투해 오랜 기간 증상을 유발하지 않기도 한다. 이 때문에 무증상 감염자도 많다. 

    하지만 이 균은 위점막의 만성 염증을 일으키고 반복적인 손상을 통해 위암 발생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 특히 가족 중 위암 병력이 있거나 위축성위염·장상피화생과 같은 전암성 병변이 동반된 경우라면 제균치료의 이득이 명확하다.

    치료는 항생제 2종과 위산분비억제제를 병합하는 삼제요법이 표준이다. 최근에는 항생제 내성문제로 인해 치료 실패율이 증가해 복약 순응도와 1차 치료 실패 시 대체요법 선택도 중요해지고 있다. 

    진단은 내시경을 통한 조직검사와 요소호기검사·혈액검사 등으로 가능하며, 치료 후에도 제균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그렇다면 헬리코박터가 있다고 해서 모두 치료해야 할까? 아니다. 무증상 감염자의 경우 위내시경검사에서 특별한 이상이 없고 고위험군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제균치료는 선택사항일 수 있다. 반대로 위궤양이나 십이지장궤양을 반복적으로 앓았거나 과거 MALT 림프종 치료 이력이 있는 경우에는 치료가 적극 권장된다.

    헬리코박터 제균치료가 위암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국내외 연구 결과가 누적되면서, 조기 치료의 필요성이 점점 부각되고 있다. 특히 위암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는 40대 이상 성인, 가족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치료 시점의 적절한 판단이 중요하다.

    헬리코박터 제균치료는 위장 건강에 도움이 되지만, 모든 환자에게 무조건적인 이득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항생제 복합요법으로 인한 위장 불편, 설사, 미각 변화 같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고 일부는 약물 복용 중단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또한 최근에는 항생제 내성률이 높아져 제균 실패율도 증가해, 치료 시작 전 복약 순응도와 내성 가능성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환자 개인의 상태에 따라 치료 이익과 부담을 비교한 뒤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헬리코박터는 치료 여부 자체보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치료하는 것이 효과적인가’를 고려해야 하는 세균이다. 감염 자체보다 감염의 맥락이 중요하고, 치료의 목적은 증상 완화가 아닌 장기적 위장 건강 보호에 있다. 

    헬리코박터 감염이 확인됐다면 단순히 치료 여부만 따지기보다 내시경 소견과 개인의 위험 요인을 바탕으로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경록 안산사랑의병원 진료부원장